-에르메스의 설립부터 7대 경영인까지-
루이비통, 샤넬과 함께 3대 명품 브랜드 그중 최상위 브랜드 에르메스에 대하여 소개한다.
티에리 에르메스는 1801년 프랑스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에르메스라는 브랜드는 1837년 설립되었는데
프랑스 파리에서 작은 마구 용품을 판매하면서 시작되었다.
마구 용품 판매의 설립 배경은 당시 상황을 보면 이해할 수 있는데
당시에는 자동차가 발명되기 이전이어서 주요 교통수단은 말과 마차였다.
이러한 이유로 에르메스는 마구 판매를 시작으로 첫 브랜딩이 되었으며
1954년 그로 인해 현재 우리가 아는 마차 모양의 로고를 사용하게 되었다.
1867년에는 세계 각국의 새로운 공산품을 소개하는 산업박람회인 민국박람회에서 1등 메달을 받아 승승장구하며
전 세계의 귀족들이 그의 마구 용품들을 찾기 시작하였따
하지만 도시화, 산업화로 인해 자동차가 증가해 마구 용품의 호황기는 오래가지 못하였다.
아버지가 떠난 1880년부터는 그가 가업을 이어
파리의 '포부르 생토노레'에서 새로 매장을 오픈하며
마구 용품뿐 아니라 여행용품, 가방 등을 제작하여 판매하면서 사업을 확장한다.
1902년에는 그의 아들 '아돌프 에르메스'와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가 가족 경영에 함께 참여한다.
당시에는 에르메스의 마구 제조하는 직원들이 80명일 정도로 사업이 확정되었었다.
두 아들은 1914년 프랑스 기병의 물품을 만들 가죽을 구입하러
미국에 출장을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유럽에서는 생소했던
'지퍼' 잠금장치를 발견한다.
형제는 지퍼와 바느질 기법으로 가방에 지퍼를 단다.
이것이 세계 최초의 가방에 지퍼를 단 가방으로 '볼리드 백'으로 불린다.
이후에는 4대 CEO "로베르 뒤마"가 그의 아버지가 사망 후 가업을 이으며
에르메스의 대표적인 상품 중 하나인 "켈리백"을 탄생시킨다.
로베르 뒤마는 브랜드의 상징이 되는 마차 로고와 시그니처 컬러인 오렌지 상자를 적극 활용한다.
이후 1938년에는 "로베르 뒤마"의 아들 "장 루이 뒤마"가 태어나며
1978년에는 그가 5대 경영인이 된다.
그는 에르메스에 실크, 가죽, 기성복 라인을 더욱 강화하여 에르메스 제2의 전성기를 가져왔다.
2004년에는 6대 경영인은 "파트릭 도마"로 에르메스 가문의 사람이 아닌
최초의 전문 경영인이다.
현재의 2014년은 5대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의 증손자인
7대 "악셀 뒤마"가 CEO를 맡아 현재까지의 에르메스를 이끌고 있다.
-에르메스의 대표 가방 켈리 백과 버킨 백-
켈리 백이 켈리 백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헐리우드의 스타 그레이스 켈리가 모나코로 시집을 가서 왕비가 되며 임신을 했고
공식석상에서 임신한 배를 가리기 위해 에르메스의 가방을 이용했는데
원래의 명칭보다 켈리백으로 더 유명해지게 된다.
이후 에르메스에서 그레이스 켈리의 허락을 받고 켈리백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된다.
켈리백의 가격은 1000만원 부터 시작되며 가죽에 따러서 억대가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1984년 에르메스의 경영자였던 "장 루이 뒤마"가 비행기를 타다 여배우 "제인 버킨"을 만나는데
마침 버킨은 켈리 백을 들고있었는데 좌석 위 선반에 넣다가 가방을 떨어뜨렸는데
안에 물건들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그 광경을 본 "장 루이 뒤마"가 '여배우 가방 속이 그게 뭐냐고' 농담을 하였다.
그러자 버킨은 '당신네 가방은 이쁘기만 하고 주머니 하나 달려있지 않아 실용적이지 않다'라고 대답하였다.
이후 뒤마는 버킨에게 실용적인 가방을 만들어준다고 하였다.
그것이 현재 에르메스의 대표 가방인 버킨 백이 되었다.
수정사항이나 에르메스에 대한 의견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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